[KBS] 다큐멘터리 역사를 찾아서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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Category: History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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Episodes: 847

Description

고구려편에 이어 발해, 백제, 신라까지~ 우리 역사의 정체성을 모색

Episode Date
제 1296편 - 홍타이지의 압박“명나라 침공에 협조하라!”
May 04, 2024
제 1295편 - 춘신사, 추신사 그리고 예물과 세폐
Apr 28, 2024
제 1294편 - 북방 방어태세, 안간힘을 썼으나…
Apr 27, 2024
제 1293편 - ‘청북(淸北) 포기론’은 왜 나왔을까
Apr 21, 2024
제 1292편 - 「안주성」을 서북방면의 군사 요충지로
Apr 20, 2024
제 1291편 - 인조는 문묘종사를 끝내 거부했다
Apr 14, 2024
제 1290편 - 국왕과 대신들의 격렬한 충돌
Apr 13, 2024
제 1289편 - 유생들도 찬반으로 나뉘어 대립하고
Apr 07, 2024
제 1288편 - 유생들의 상소 “이이와 성혼을 문묘에 종사하라”
Apr 06, 2024
제 1287편 - 문묘종사 대상이 왜 이이와 성혼인가
Mar 31, 2024
제 1286편 - 인조는 붕당(朋黨)에 손사래를 쳤지만
Mar 30, 2024
제 1285편 - 추숭 절차의 완성, 종묘에 들어가다
Mar 24, 2024
제 1284편 - 정원군, 드디어 ‘원종(元宗)’이 되다
Mar 23, 2024
제 1283편 - 인조의 아버지가 왕으로 편입되다
Mar 17, 2024
제 1282편 - 정원군 추숭, 명나라에 물어보자
Mar 16, 2024
제 1281편 - 정원군 추승을 둘러싼 격렬한 대류
Mar 10, 2024
제 1280편 - 정원군 추승의 길은 멀기만하고
Mar 09, 2024
제 1279편 - 상주의 자리를 동생에게 내어주다
Mar 03, 2024
제 1278편 - 인조는 모친상의 상주가 될 수 없다는데
Mar 02, 2024
제 1277편 - 대통 논란 인조는 선조의 아들인가 손자인가
Feb 25, 2024
제 1276편 - 어지러운 동강진 유흥치도 죽었다
Feb 24, 2024
제 1275편 - 유흥치의 가도 귀환, 조선은 혼란에 빠지고
Feb 21, 2024
제 1274편 - 요란했던 출정, 그리고 맥없는 철군
Feb 17, 2024
제 1273편 - 유흥치가 동강진에서 사라졌다
Feb 11, 2024
제 1272편 - 인조 가도정벌을 고집하다
Feb 10, 2024
제 1271편 - 동강진에 반란이 일어났다
Feb 04, 2024
제 1270편 - 원숭환에게 제자관을 보내다
Feb 03, 2024
제 1269편 - 명나라 조정 모문룡의 처형을 추인하다
Jan 28, 2024
제 1268편 - 모문룡 사후에 가도 그것이 궁금하다
Jan 27, 2024
제 1267편 - 원숭환은 왜 모문룡을 죽였나
Jan 21, 2024
제 1266편 - 모문룡이 처형되었다
Jan 20, 2024
제 1265편 - 요동경략 원숭환, 모문룡을 호출하다
Jan 14, 2024
제 1264편 - 모문룡에 대한 불신은 점점 커지는데
Jan 13, 2024
제 1263편 - 모문룡, 조선 백성의 목숨을 전리품으로 삼다니
Jan 07, 2024
제 1262편 - 명나라 도독 모문룡의 ‘고약한 전쟁’
Jan 06, 2024
제 1261편 - 후금에 가는 사신을 의주에 멈춰 세우다
Dec 31, 2023
제 1260편 - 후금의 횡포“폐물을 더 많이 바쳐라!”
Dec 30, 2023
제 1259편 - 장마당에 끌려나온 수백 명의 조선인 포로들
Dec 24, 2023
제 1258편 - 후금의 독촉“회령에도 시장을 열자”
Dec 23, 2023
제 1257편 - 압록강 중강(中江)에 국제시장이 열렸다
Dec 17, 2023
제 1256편 - 후금의 엄포“탈출한 포로를 되돌려 보내라"
Dec 16, 2023
제 1255편 - 몸값을 바쳐야 포로를 풀어주겠다니
Dec 10, 2023
제 1254편 - 인성군 이공(李珙), 유배지에서 자결하다
Dec 09, 2023
제 1253 - 또 하나의 반역사건「유효립의 난」
Dec 03, 2023
제 1252편 - 주화파와 척화파 그 대립의 희생자들
Dec 02, 2023
제 1251퍈 - 만들어진 반역사건 「이인거의 반란
Nov 26, 2023
제 1250편 - 이인거는 반란을 일으켰을까
Nov 25, 2023
제 1249편 - 전쟁은 끝났으나 조정은 갈등에 휩싸이고
Nov 19, 2023
제 1248편 - 주화파의 총대를 멘 이귀(李貴)
Nov 17, 2023
제 1247편 - 명나라 황제 천계제(天啓帝)가 죽었다
Nov 12, 2023
제 1246편 - 강홍립, 고국 땅에서 숨을 거두다
Nov 11, 2023
제 1245편 - 명나라의 오해를 해소하다
Nov 05, 2023
제 1244편 - 주문(奏文)을 지참하고 북경으로 떠나다
Nov 04, 2023
제 1243편 - 정묘호란, 명나라에는 어떻게 보고할 것인가
Oct 29, 2023
제 1242편 - 후금군과 용골산성 사이에 모문룡이 있었다
Oct 28, 2023
제 1241편 - 의병장 정봉수가 있었다
Oct 22, 2023
제 1240편 - 환도(還都)는 했으나 북방은 혼란스럽고
Oct 21, 2023
제 1239편 - 머리를 깎인 3만 명의 평안도 백성들
Oct 15, 2023
제 1238편 - 강홍립, 8년만에 관작을 회복하다
Oct 14, 2023
제 1237편 - 화친은 이루어졌으나 후금군은 떠나지 않고
Oct 08, 2023
제 1236편 - 아민의 엄포 “내가 조선의 왕이 될 수도 있다”
Oct 07, 2023
제 1235편 - 언관(言官)의 파상공세에 왕권은 위축되고
Oct 01, 2023
제 1234편 - 불안정한 휴전협정, 화친서약은 했으나…
Sep 30, 2023
제 1233 - 후금과 화친 맹약을 하다
Sep 24, 2023
제 1232편 - 명나라 연호를 피해가는 묘수‘게첩((揭帖)’
Sep 23, 2023
제 1231편 - 후금의 반발 “명나라 연호를 쓰지 말라”
Sep 17, 2023
제 1230편 - “왕의 동생을 볼모로 보내라”
Sep 16, 2023
제 1229편 - 주화파(主和派)와 척화파(斥和派)의 설전
Sep 10, 2023
제 1228편 - 편전에서 열린‘강홍립 청문회’
Sep 09, 2023
제 1227편 - 임진강 방어선을 포기하다니
Sep 03, 2023
제 1226편 - 후금의 엄포, 서울을 점령하겠다!
Sep 02, 2023
제 1225편 - 인조의 고민, 대명(對明) 관계를 어찌할 것인가
Aug 27, 2023
제 1224편 - 후금의 제안 “명나라와 단절하고 형제국이 되자”
Aug 26, 2023
제 1223편 - 강홍립, 포로에서 화친의 중재자로
Aug 20, 2023
제 1221편 - 인조, 강화도로 파천하다
Aug 19, 2023
제 1221편 - 평양성을 거저 내주다
Aug 13, 2023
제 1220편 - 열다섯 살 소현세자, 분조를 이끌고 전주로
Aug 12, 2023
제 1219편 -
Aug 06, 2023
제 1218편 -
Aug 05, 2023
제 1217편 - 후금군은 민심이반을 부채질하고
Jul 30, 2023
제 1216편 - 화친하기 위해서 쳐들어왔다니…
Jul 29, 2023
제 1215편 - 능한산성도 무너지고
Jul 23, 2023
제 1214편 - 누르하치가 죽고 홍타이지가 즉위하였다
Jul 22, 2023
제 1213편 - 정묘호란 발발-후금이 쳐들어왔다
Jul 16, 2023
제 1212편 - 요동난민은 몰려들고 군량은 모자라고
Jul 15, 2023
제 1211편 - 의주부윤, 모문룡의 부하장수에게 곤장을 치다
Jul 09, 2023
제 1210편 - ‘광해군의 모문룡’과 ‘인조의 모문룡’
Jul 08, 2023
제 1209편 - 강홍립의 아들 강숙, 후금 밀입국에 실패하다
Jul 02, 2023
제 1208편 - “아들을 보내서 강홍립을 설득하자”
Jul 01, 2023
제 1207편 - 포로가 된 강홍립, 적군인가 아군인가
Jun 25, 2023
제 1206편 - 모든 행정력을 강화도에 집중하다
Jun 24, 2023
제 1205편 - 남한산성을 완성하다
Jun 18, 2023
제 1204편 - 인조의 방어대책, 왜‘남한산성’인가
Jun 17, 2023
제 1203편 - 파천을 끝내고 환도하다
Jun 11, 2023
제 1202편 - ‘바람’이 승패를 가른 「안현전투」
Jun 10, 2023
제 1201편 - 정충신의 전술 “무악재 고개를 점령하라!”
Jun 04, 2023
제 1200편 - 이괄은 도성을 접수하고 인조는 공주로 피신하고
Jun 03, 2023
제 1199편 - 반란군은 드디어 임진강을 건너고
May 28, 2023
제 1198편 - 도원수 장만, 반란군 토벌에 나섰으나…
May 27, 2023
제 1197편 - 기자헌은 왜 죽어야 했나
May 21, 2023
제 1196편 - 반란군, 도성을 향해 진격하다
May 20, 2023
제 1195편 - 이괄, 반역의 칼을 뽑아들다
May 14, 2023
제 1194편 - 인조의 믿음 “이괄은 충성스런 신하다”
May 13, 2023
제 1193편 - 이괄은 왜 역심(逆心)을 품었나
May 07, 2023
제 1192편 - ‘불사이군(不事二君)’은 반역인가 충절인가
May 06, 2023
제 1191편 - 목숨을 앗아간 시(詩)‘상부탄(孀婦歎)’
Apr 30, 2023
제 1190편 - 유몽인의 역모사건, 사실일까
Apr 29, 2023
제 1189편 - 국왕 책봉을 인가받다
Apr 23, 2023
제 1188편 - 이경전, 목숨과 바꾼 사행길
Apr 22, 2023
제 1187편 - 인목대비의 고집“책봉 주문을 고쳐 써라!”
Apr 16, 2023
제 1186편 - 북경에 책봉 주청사를 보내야 하는데…
Apr 15, 2023
제 1185편 - 모화관에서의 출정식, 무엇을 노렸나
Apr 09, 2023
제 1184편 - 친정과 도성사수, 가능할까
Apr 08, 2023
제 1183편 - 인조는 왜 친정을 선언하였나
Apr 02, 2023
제 1182편 - 친명배금의 노선을 강화하다
Apr 01, 2023
제 1181편 - 모문룡에 대한 대접이 달라졌다
Mar 26, 2023
제 1180편 - 인조의 고민, 붕당(朋黨)을 어찌할 것인가
Mar 25, 2023
제 1179편 - 76세에 다시 영의정이 된 이원익
Mar 19, 2023
제 1178편 - 동대문과 남대문이 다시 열렸으나…
Mar 18, 2023
제 1177편 - 인조의 고집“유희분을 처형하라!”
Mar 12, 2023
제 1176편 - 이이첨의 목을 베다
Mar 11, 2023
제 1175편 - 폐세자 부부의 비극적인 죽음
Mar 05, 2023
제 1174편 - 폐세자 이지(李祬), 유배지에서 탈출을 시도하다
Mar 04, 2023
제 1173편 - 반정(反正)의 명분은 정당하였나
Feb 26, 2023
제 1172편 - 인목대비의 「광해군 폐위 교서」
Feb 25, 2023
제 1171편 - 능양군, 왕이 되다
Feb 19, 2023
제 1170편 - 옥새(玉璽)를 넘겨받다
Feb 18, 2023
제 1169편 - 곡절 끝에 인목대비의 윤허를 받았으나…
Feb 12, 2023
제 1168편 - 창덕궁은 불타고 능양군은 속이 탄다
Feb 11, 2023
제 1167편 - 반정군, 창덕궁에 무혈입성하다
Feb 04, 2023
제 1166편 - 반정군, 출정 전야(前夜)
Feb 04, 2023
제 1165편 - 반역의 시간은 닥쳐오는데 광해군은 천하태평이고
Jan 29, 2023
제 1164편 - 호랑이를 잡으랬더니…
Jan 28, 2023
제 1163편 - 반정(反正)을 공모(共謀)하다
Jan 22, 2023
제 1162편 - 광해군, 쫓겨나다
Jan 21, 2023
제 1161편 - 무리한 궁궐 역사(役事), 그리고 뒤늦은 후회
Jan 15, 2023
제 1160편 - “전쟁이 났어도 궁궐은 지어야 한다”
Jan 14, 2023
제 1159편 - 김 상궁, 그의 권세에도 끝이 있었다
Jan 08, 2023
제 1158편 - 광해군 측근의 또 다른 실세 김 상궁(金尙宮)
Jan 07, 2023
제 1157편 - 어지러운 정치, 매관매직이 판을 치고
Jan 01, 2023
제 1156편 - 이이첨은 왜 이조판서를 회피했을까
Dec 31, 2022
제 1155편 - 광해군, 명나라 황제의 칙사를 끝내 외면하다
Dec 25, 2022
제 1154편 - 조선의 골칫덩어리 모문룡
Dec 24, 2022
제 1153편 - 원치 않은 영광, 존호(尊號)를 받다
Dec 19, 2022
제 1152편 - 광해군은 왜 존호(尊號)를 거부하였나
Dec 16, 2022
제 1151편 - 따돌림 당하는 광해군, 고립무원의 처지에 몰리다
Dec 10, 2022
제 1150편 - 명나라 칙사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다
Dec 10, 2022
제 1149편 - 광해군과 비변사의 충돌
Dec 03, 2022
제 1148편 - 광해군, 실무회담 합의사항을 거부하다
Dec 03, 2022
제 1147편 - 광해군의 명령 “명나라 칙사를 두려워 말라!”
Nov 26, 2022
제 1146편 - 광해군, 명나라는 못 믿겠고 후금은 두렵다
Nov 25, 2022
제 1145편 - 명나라 감군어사가 왔다
Nov 19, 2022
제 1144편 - 후금 기병의 침공, 맞설 것인가 피할 것인가
Nov 18, 2022
제 1143편 - 후금 철기병이 모문룡을 잡으러 왔다
Nov 12, 2022
제 1142편 - 군신간의 대립, 그리고 흔들리는 왕권
Nov 11, 2022
제 1141편 - 모문룡은 압록강 건너기를 거부하고
Nov 05, 2022
제 1140편 - “모문룡을 명나라로 돌려보내자!”
Nov 04, 2022
제 1139편 - 후금의 강경파 「홍타이지」가 수상하다
Oct 29, 2022
제 1138편 - 정충신의 후금 사행(使行(사행), 그 득실은…
Oct 28, 2022
제 1137편 - 후금의 화친 제의를 정충신이 거부하다
Oct 22, 2022
제 1136편 - 정충신과 후금 장수의 담판
Oct 22, 2022
제 1135편 - 배를 타고 바다로, 고난의 사신 행차
Oct 15, 2022
제 1134편 - 조선의 골칫거리 모문룡(毛文龍)
Oct 14, 2022
제 1133편 - 만포 첨사 정충신, 누르하치의 본거지에 가다
Oct 08, 2022
제 1132편 - 요동이 후금에게 함락되었다
Oct 07, 2022
제 1131편 - 명나라 황제, 29일만에 또 사망하다
Oct 01, 2022
제 1130편 - 명나라 황제 ‘만력제(萬曆帝)’가 죽었다
Sep 30, 2022
제 1129편 - 기미(羈縻)도 자강(自强)도 힘이 부쳤다
Sep 24, 2022
제 1128편 - 조선감호론, 없던 일이 되다
Sep 23, 2022
제 1127편 - 특명, 감호론을 반박하라!
Sep 17, 2022
제 1126편 - 북방외교의 돌출변수, 조선감호론(朝鮮監護論)
Sep 17, 2022
제 1125편 - 명나라 사신은 빈손으로 돌아가고
Sep 10, 2022
제 1124편 - 광해군의 고집“추가파병은 불가하다!”
Sep 10, 2022
제 1123편 - 또 다시 군사를 징발하라니…
Sep 03, 2022
제 1122편 - 조선에서 무시당한 누르하치의 국서(國書)
Sep 02, 2022
제 1121편 - 명나라와 후금 사이, 광해군의 딜레마
Aug 27, 2022
제 1120편 - 비변사를 향한 광해군의 분노
Aug 26, 2022
제 1119편 - 양반 출신의 포로 4백여 명이 처형되다
Aug 21, 2022
제 1118편 - 항복, 포로가 되어 끌려가다
Aug 19, 2022
제 1117편 - 조선군의 항복은 예정돼 있었을까
Aug 13, 2022
제 1116편 - 조선군, 수천 명이 전사하고 나머지는 포위되고…
Aug 12, 2022
제 1115편 - 십만 대군이 후금의 철기병에게 무너졌다
Aug 06, 2022
제 1114편 - 조명연합군의 첫접전, 「심하전투」
Aug 06, 2022
제 1113편 - 조선군, 고난의 원정길
Jul 30, 2022
제 1112편 - 내키지 않은 출정, 압록강을 건넜으나…
Jul 29, 2022
제 1111편 - 국왕보다 사대(事大)가 먼저다-반목하는 신하들
Jul 23, 2022
제 1110편 - 사행길을 가로막은 요동경략 양호
Jul 22, 2022
제 1109편 - 누르하치의 경고“조선은 파병하지 말라!”
Jul 16, 2022
제 1108편 - 요동으로, 북경으로 사절단은 떠났는데…
Jul 16, 2022
제 1107편 - 사대(事大)를 앞세운 신하들의 저항
Jul 09, 2022
제 1106편- 광해군의 출병 지연전략은 통할 것인가
Jul 09, 2022
제 1105편 - 명나라 파병을 둘러싼 군신간의 논란
Jul 02, 2022
제 1104편 - 전쟁의 위기에도 궁궐 공사는 멈추지 않았다
Jul 01, 2022
제 1103편 - 명과 후금의 격돌, 조선조정은 불안에 싸이고
Jun 26, 2022
제 1102편 - 누르하치의 선전포고
Jun 24, 2022
제 1101편 - 광해군과 비변사의 대립, 그 전초전
Jun 18, 2022
제 1100편 - 죄 없는 의주부윤의 목을 베라니
Jun 17, 2022
제 1099편 - 압록강 연안엔 전운이 감돌고
Jun 11, 2022
제 1098편 - 누르하치, 후금(後金)을 세우다
Jun 10, 2022
제 1097편 - 서북 변경을 위협하는 「건주여진」
Jun 04, 2022
제 1096편 - 광해군의 북방정책, 어떻게 볼 것인가
Jun 03, 2022
제 1095편 - 허균은 왜 처형 당했나
May 28, 2022
제 1094편 - 이항복이 죽었다
May 27, 2022
제 1093편 - 인목대비, 서궁에 유폐되다
May 22, 2022
제 1092편 - “인목대비를 내치되 ‘폐비’라고 하지는 말라”
May 20, 2022
제 1091편 - 눈보라치는 한밤중에 문무백관은 왜 모였을까
May 14, 2022
제 1090편 - 이항복과 기자헌은 유배형에 처해지고
May 13, 2022
제 1089편 - 폐비 반대론자들을 어찌할 것인가
May 07, 2022
제 1088편 - 이항복과 기자헌, 폐비 반대를 직언하다
May 06, 2022
제 1087편 - 폐비문제를 여론조사에 부치다
Apr 30, 2022
제 1086편 - 유생들의 폐비상소가 빗발치다
Apr 29, 2022
제 1085편 - 장원서(掌苑署)의 단합대회
Apr 23, 2022
제 1084편 - 허균은 왜?
Apr 22, 2022
제 1083편 - “윤선도를 함경도로 유배하라!”
Apr 17, 2022
제 1082편 - 유생 윤선도의 목숨을 건 상소문
Apr 15, 2022
제 1081편 - 광해군, 생모의 추숭사업을 완결짓다
Apr 10, 2022
제 1080편 - 공빈 김씨를 종묘에 부묘하다
Apr 09, 2022
제 1079편 - 광해군은 왜 궁궐 토목공사에 집착하였나
Apr 03, 2022
제 1078편 - 공사비 조달을 위한 매관매직이 난무하였다
Apr 02, 2022
제 1077편 - 점술가의 한 마디에 없던 궁궐이 생겨나고
Mar 27, 2022
제 1076편 - 인왕산 자락 밑에 새 궁궐을 짓겠다니
Mar 26, 2022
제 1075편 - 교하천도는 포기하되 새 궁궐을 짓겠다니
Mar 19, 2022
제 1074편 - 광해군이 불을 지핀 「천도론」
Mar 19, 2022
제 1073편 - 파주의 교하(交河)로 도읍을 옮기라니…
Mar 12, 2022
제 1072편 - 창덕궁으로 이사하기를 거부하다
Mar 12, 2022
제 1071편 - 백성은 굶주려도 궁궐 공사는 끝이 없고
Mar 05, 2022
제 1070편 - 불타버린 궁궐을 어찌 할 것인가
Mar 04, 2022
제 1069편 - 정온(鄭蘊)은 제주도로 유배되고
Feb 26, 2022
제 1068편 - 누가 영창대군을 죽였는가
Feb 26, 2022
제 1067편 - 영창대군이 죽었다
Feb 20, 2022
제 1066편 - 이덕형이 죽었다
Feb 19, 2022
제 1065편 - 이항복과 이덕형도 조정에서 밀려나고
Feb 13, 2022
제 1064편 - 영창대군을 강화에 유배하다
Feb 12, 2022
제 1063편 - 쓴 소리 하는 대간을 갈아치우다
Feb 05, 2022
제 1062편 - 충(忠)이냐 효(孝)냐 그것이 문제로다
Feb 04, 2022
제 1061편 - 영창대군의 외조부 김제남을 처형하다
Jan 29, 2022
제 1060편 - “영창대군을 처단하소서!”
Jan 29, 2022
제 1059편 - 추국장에 끌려나온 인목대비의 나인들
Jan 22, 2022
제 1058편 - 역모사건에 소환된 유교칠신(遺敎七臣)
Jan 22, 2022
제 1057편 - 영창대군의 외조부 김제남이 주모자라는데…
Jan 15, 2022
제 1056편 - 버티면 고문하고 자복하면 죽였다
Jan 14, 2022
제 1055편 - 충언을 고할 대신이 없었다
Jan 08, 2022
제 1054편 - 대역(大逆) 사건은 어떻게 만들어졌나
Jan 08, 2022
제 1053편 - 문경새재에서 은(銀) 장수가 살해됐는데…
Jan 01, 2022
제 1052편 - 유영경을 부관참시하다
Jan 01, 2022
제 1051편 - 경연은 회피하고 친국(親鞫)에 집착하다
Dec 26, 2021
제 1050편 - 93세의 노파도 추국장으로 끌려오고
Dec 25, 2021
제 1049편 - 역모사건에 다시 소환된 _왕비 추숭 논란
Dec 19, 2021
제 1048편 - 가택수색, 서신검열…확대일로의 역모사건
Dec 18, 2021
제 1047편 - 고문, 또 고문 … 만들어지는 반역죄인들
Dec 11, 2021
제 1046편 - 불안한 왕권의 희생양, 김직재 김백함 부자(父子)
Dec 11, 2021
제 1045편 - 광해군이 앞장서서 역모사건을 만들다
Dec 04, 2021
제 1044편 - 공문서 위조사건은 어떻게 반역사건이 되었나
Dec 04, 2021
제 1043편 - 목숨과 바꾼 풍자시(諷刺詩) 한 수
Nov 27, 2021
제 1042편 - 광해군, ‘합격취소’의 명을 취소하다
Nov 27, 2021
제 1041편 - “삭과(削科) 조처를 거두시옵소서”
Nov 21, 2021
제 1040편 - 임숙영의 과거급제를 취소하라
Nov 20, 2021
제 1039편 - 조정에 이항복과 이덕형이 있었다
Nov 14, 2021
제1038편 - 유생들의 집단행동-‘공관(空館)’
Nov 13, 2021
제1037편 - 정인홍, 성균관 청금록(靑衿錄)에서 제명당하다
Nov 07, 2021
제1036편 - 광해군의 고민-정인홍을 어찌할 것인가
Nov 06, 2021
제1035편 - 정인홍과 회퇴변척소(晦退辨斥疏)
Oct 31, 2021
제1034편 - 허준, 유배지에서 「동의보감」을 완성하다
Oct 30, 2021
제1033편 - 대동법 시행은 광해군의 업적일까?
Oct 24, 2021
제1032편 - 누가 대동법을 반대하였는가
Oct 23, 2021
제1031편 - 출발부터 삐걱거리는‘경기 선혜법’
Oct 17, 2021
제1030편 - 제주 농민은 감귤나무를 불태우고
Oct 16, 2021
제1029편 - 쉽지 않은 개혁의 길, 대동법
Oct 10, 2021
제1028편 - 「기유약조」를 체결하다
Oct 09, 2021
제1027편 - “대마도의 세견선은 스무 척만 허용한다”
Oct 03, 2021
제1026편 - 부산에서 진행된 일본과의 국교협상
Oct 02, 2021
제1025편 - “일본사신을 도성에 들이지 말라!”
Sep 26, 2021
제1024편 - 일본의 끈질긴 화친제의, 어찌할 것인가
Sep 25, 2021
제1023편 - 광해군, 책봉을 받다
Sep 19, 2021
제1022편 - 책봉사신은 노골적으로 뇌물을 요구하고
Sep 18, 2021
제1021편 - 엇갈린 운명, 임해군과 광해군
Sep 12, 2021
제1020편 - 누가 임해군을 죽였는가
Sep 11, 2021
제1019편 - 임해군의 노비가 수천 명이었다는데...
Sep 05, 2021
제1018편 - 북방 여진족이 수상하다
Sep 04, 2021
제1017편 - 뇌물을 밝히는 명나라 사신들
Aug 28, 2021
제1016편 - 충돌-토역론(討逆論)이냐 전은론(全恩論)이냐
Aug 28, 2021
제1015편 - 임해군의 처형을 주장하는 북인 강경파
Aug 22, 2021
제1014편 - 임해군의 항변 "나는 반역 죄인이 아니다!"
Aug 21, 2021
제1013편 - 임해군의 상태를 조사하겠다는 명나라 사신
Aug 15, 2021
제1012편 - 광해군은 책봉을 거부당하고
Aug 14, 2021
제1011편 - 고문으로 만들어낸 임해군 역모사건
Aug 08, 2021
제1010편 - 임해군, 진도로 귀양가다
Aug 07, 2021
제1009편 - 변장하고 도망치다 잡힌 임해군
Aug 01, 2021
제1008편 - 광해군, 명나라에 국왕책봉을 청하다
Jul 31, 2021
제1007편 - 유영경에게 자결을 명하다
Jul 25, 2021
제1006편 - 일망타진 된 유영경과 그 일파
Jul 24, 2021
제1005편 - 영의정 유영경, 궁지에 몰리다
Jul 18, 2021
제1004편 - 광해군, 왕이 되다
Jul 17, 2021
제1003편 - 제 4부 폐세자 1호 양녕의 승부수
Jul 11, 2021
제1002편 - 제 3부 만들어진 역사 위화도 회군
Jul 10, 2021
제1001편 - 제 2부 해상왕 장보고, 염라대왕 앞에 서다
Jul 04, 2021
제1000편 - 제 1부 타임머신을 타고 찾아간 광개토대왕비
Jul 03, 2021
제999편 - 선조 시대, 막을 내리다
Jun 27, 2021
제998편 - 의식을 되찾은 선조와 막판의 권력다툼
Jun 26, 2021
제997편 - “광해군에게 왕위를 넘기겠다”
Jun 20, 2021
제996편 - 후계구도의 변수, 영창대군이 태어났다!
Jun 19, 2021
제995편 - 또 다시 거부당한 광해군의 세자 책봉
Jun 13, 2021
제994편 - 세자 책봉이냐, 왕비 책봉이냐
Jun 12, 2021
제993편 - 패륜아 순화군을 어찌할 것인가
Jun 06, 2021
제992편 - 광해군의 후원자 의인왕후가 죽었다
Jun 05, 2021
제991편 - 무너진 토지제도와‘빈곤의 악순환’
May 30, 2021
제990편 - 은폐된 토지를 찾아라 – 양전(量田) 사업
May 29, 2021
제989편 - 멀고도 험한 국가 재건의 길
May 23, 2021
제988편 - 의병대장 곽재우도 당쟁을 질타했으나 …
May 22, 2021
제987편 - 어지러운 정국, 난립하는 붕당들
May 16, 2021
제986편 - 대간의 공세로 유성룡은 삭탈관작 당하고
May 15, 2021
제985편 - 영의정 유성룡이 파직되다
May 09, 2021
제984편 - 일본에 끌려간 포로들은 어찌 되었나
May 08, 2021
제983편 - 조선 주둔 명나라군이 끼친 민폐
May 02, 2021
제982편 - 명나라군은 몇 명이나 남아야 하나
May 01, 2021
제981편 - 대마도에서 화친을 제의해 왔으나…
Apr 25, 2021
제980편 - 「대마도 정벌론」은 왜 나왔을까
Apr 24, 2021
제979편 - 원균은 어떻게 일등공신이 되었나
Apr 18, 2021
제978편 - 24명의 내시가 공신책봉을 받았으니
Apr 17, 2021
제977편 - 「7년전쟁」이 끝났다
Apr 11, 2021
제976편 - 이순신의 죽음, 외면하는 선조
Apr 10, 2021
제975편 - 아, 이순신!
Apr 04, 2021
제974편 - 노량해전, 불이 붙었다
Apr 03, 2021
제973편 - 수천의 수급(首級)을 뇌물로 받은 명나라군
Mar 28, 2021
제972편 - ‘이순신의 전쟁’은 끝나지 않았다
Mar 27, 2021
제971편 - 명나라군의 굴욕, 사천성 전투의 참패
Mar 21, 2021
제970편 - 왜교성에 이어 도산성에서도 패퇴하다
Mar 20, 2021
제969편 - 왜교성 전투-명나라군은 패전을 자초했다
Mar 14, 2021
제968편 - 조ㆍ명 연합수군, 순천으로 출격하다
Mar 13, 2021
제967편 - 풍신수길의 유언, 철군을 서두르라!
Mar 07, 2021
제966편 - 풍신수길이 죽었다
Mar 06, 2021
제965편 - 명나라 주사(主事) 정응태의 좌충우돌
Feb 28, 2021
제964편 - 경리 양호, 파직 당하다
Feb 27, 2021
제963편 - “중국 장수 양호를 탄핵에서 구하라”
Feb 21, 2021
제962편 - 다시 주화론(主和論)이 고개를 들고…
Feb 20, 2021
제961편 - 사로병진(四路竝進)-네 갈래로 진격하라!
Feb 14, 2021
제960편 - 이순신과 진린, 그리고 ‘절이도(折爾島) 전투’
Feb 13, 2021
제959편 - 이순신의 명나라 장수 길들이기
Feb 07, 2021
제958편 - 이순신,「해로통행첩」을 발행하다
Feb 06, 2021
제957편 - 수군통제영을 고금도로 옮기다
Jan 31, 2021
제956편 - 울산성 전투, 누가 이기고 누가 졌나
Jan 30, 2021
제955편 - 울산성 공략에 실패하다
Jan 24, 2021
제954편 - 울산성 전투-고전하는 조‧명 연합군
Jan 23, 2021
제953편 - 울산에서 승전보가 날아오긴 했으나…
Jan 17, 2021
제952편 - 명나라군의 강공작전, 울산으로!
Jan 16, 2021
제951편 - 선조는 이순신의 전공을 깎아내리기 급급하고
Jan 10, 2021
제950편 - 열 세척으로 이룬 기적, 명량대첩
Jan 09, 2021
제949편 - 출정, 명량해전
Jan 03, 2021
제948편 - 판옥선 열세 척, 초라한 삼도 수군 통제영
Jan 02, 2021
제947편 - 직산에서 일본군의 북상을 저지하다
Dec 27, 2020
제946편 - 전주 함락-한성은 혼란에 빠지고
Dec 26, 2020
제945편 - 남원성이 무너졌다
Dec 20, 2020
제944편 - 위기의 남원성
Dec 19, 2020
제943편 - 남원성 전투, 불이 붙었다
Dec 13, 2020
제942편 - 남원으로 진격하는 가등청정
Dec 12, 2020
제941편 - 폐허에서 수군을 재건하라니…
Dec 06, 2020
제940편 - 이순신을 다시 수군통제사로
Dec 05, 2020
제939편 - 칠천량 패전, 책임은 누가 지나
Nov 29, 2020
제938편 - 원균이 죽었다 이억기도 죽었다
Nov 28, 2020
제937편 - 참혹한 패배, 칠천량해전
Nov 22, 2020
제936편 - 권율은 원균에게 곤장을 쳤을까
Nov 21, 2020
제935편 - 부총병 양원은 남원을 지킬 수 있을까
Nov 15, 2020
제934편 - 선조는 다시 몽진 카드를 만지작거리고
Nov 14, 2020
제 933편 - 명나라의 대일(對日) 선전포고
Nov 08, 2020
제932편 - 정유재란의 공격목표는 전라도였다
Nov 07, 2020
제931편 - 풍신수길, 조선 재침(再侵)을 명하다
Nov 01, 2020
제930편 - 명나라 장수에게 국왕도 쩔쩔매고
Oct 31, 2020
제929편 - 부총병 양원, 삼천 기병을 인솔해왔으나
Oct 25, 2020
제928편 - 원균의 억지, 30만 정예군을 지원해달라
Oct 24, 2020
제927편 - 사명당과 가등청정의 담판
Oct 18, 2020
제926편 - 원균, 항복해온 일본인을 총통으로 공격하다
Oct 17, 2020
제925편 - 백의종군 이순신, 수군통제사 원균
Oct 11, 2020
제924편 - 이순신, 백의종군의 길
Oct 10, 2020
제923편 - 위기일발, 이순신을 구명하라!
Oct 04, 2020
제922편 - 이순신은 끝내 옥에 갇히고
Oct 03, 2020
제921편 - "이순신을 체포하라!"
Sep 27, 2020
제920편 - 요시라의 간계(奸計)
Sep 26, 2020
제919편 - 선조는 다시 파천을 궁리하고
Sep 20, 2020
제918편 - 이순신이냐, 원균이냐
Sep 19, 2020
제917편 - 협상 결렬-다시 전운이 감돌다
Sep 13, 2020
제916편 - 「통신사」파견을 둘러싼 공방
Sep 12, 2020
제915편 - 명나라 사신은 왜 밤중에 도망쳤나
Sep 06, 2020
제914편 - 명나라 황제의 칙사가 조선에 왔다
Sep 05, 2020
제913편 - 사명당 유정, 가등청정을 만났으나
Aug 30, 2020
제912편 - 이정암, 조-일 강화협상을 주장하다
Aug 29, 2020
제911편 - 의병장 김덕령의 억울한 죽음
Aug 23, 2020
제910편 - 영웅이 된 홍가신, 역적이 된 김덕령
Aug 22, 2020
제 496편 - 아악과 향악을 절충하여 새 예악을 만들다
Aug 21, 2020
제 499편 - 노비 132명을 뇌물로 상납하다
Aug 21, 2020
제 500편 - 김도련 노비사건 , 조말생 , 그리고 세종의 용인술
Aug 21, 2020
제 501편 - 「의정부 서사제」로 전환하다
Aug 21, 2020
제 502편 - 세자의 「대리청정」을 관철하다
Aug 21, 2020
제 505편 - 세종이 생각한 「죄와 벌」
Aug 21, 2020
제 507편 - 훈민정음, 누가 언제 만들었나
Aug 21, 2020
제 510편 - 한문 공부 잘 하려면 「언문」부터 배워라
Aug 21, 2020
제 511편 - 「용비어천가」를 지은 뜻은?
Aug 21, 2020
제 513편 - 일본으로 간 통신사, 그 뜨거운 바닷길
Aug 21, 2020
제 515편 - 두 명의 세자빈이 폐출되다
Aug 21, 2020
제 627편 - 박영문 신윤무의 옥사와 조광조의 등장
Aug 21, 2020
제909편 - 반란군의 자멸, 그리고 선조의 반성문
Aug 15, 2020
제908편 - 이몽학의 반란군, 홍주로 출격하다
Aug 14, 2020
제 907편 - 충청도에서 다시 반역의 깃발이 오르고
Aug 08, 2020
제 906편 - 제2차 당항포 해전
Aug 07, 2020
제 905편 - 일본군을 치지 말라니, 이순신이 화났다
Aug 01, 2020
제 904편 - 금토패문(禁討牌文), 누가 보냈나
Jul 31, 2020
제 903편 - 중국을 둘러싼 조선과 일본의 외교전쟁
Jul 25, 2020
제 902편 - 송유진 반란사건
Jul 24, 2020
제 901편 - 흉흉한 민심을 틈타 반역을 꾀하다
Jul 18, 2020
제 900편 - 둔전(屯田) 경영, 이순신이 하면 달랐다
Jul 17, 2020
제 899편 - 기근 극복을 위한 비상대책-종자를 확보하라
Jul 11, 2020
제 898편 - 굶어 죽더라도 상복(喪服)은 입으라니
Jul 10, 2020
제 897편 - 굶주린 백성이 인육을 먹었다는데…
Jul 04, 2020
제 896편 - “광해군에게 군무(軍務)를 맡겨라”
Jul 03, 2020
제 895편 - 선위(禪位)를 둘러 싼 선조와 유성룡의 갑론을박
Jun 27, 2020
제 894편 - 선조가 서울로 돌아왔다
Jun 26, 2020
제 893편 - 광해군에게 왕위를 넘기겠다!
Jun 20, 2020
제 892편 - 선조는 왜 환도(還都)를 두려워하였나
Jun 19, 2020
제 891편 - 가짜 항복문서로 화친을 시도하다
Jun 13, 2020
제 890편 - 강화협상-허세를 앞세운 풍신수길
Jun 12, 2020
제 889편 - 조선 4도를 일본에 넘기라고?
Jun 06, 2020
제 888편 - 조선인 포로, 명나라 사신, 그리고 풍신수길
Jun 05, 2020
제 887편 - 포로가 전해준 정보로 송응창을 탄핵하다
May 30, 2020
제 886편 - 나고야 성’에 다녀온 포로 제만춘
May 29, 2020
제 885편 - 송응창과 이여송은 요동으로 돌아가고
May 23, 2020
제 884편 - “우리도 조총(鳥銃)을 만들자”
May 22, 2020
제 883편 - 이순신, 삼도수군통제사가 되다
May 16, 2020
제 882편 - 일본군은 경상도 해안에 토성을 구축하고…
May 15, 2020
제 881편 - 그러나 이순신은 호남을 지켰다
May 09, 2020
제 880편 - 새로운 의병장 김덕령이 나섰다
May 08, 2020
제 879편 - 논개, 남강에 지다
May 02, 2020
제 878편 - 시체가 남강을 메웠다
May 01, 2020
제 877편 - 진주성, 무너지다
Apr 25, 2020
제 876편 - 6천의 군사로 6만 대군과 맞서다
Apr 24, 2020
제 875편 - 일본군, 성벽 바깥에 토산(土山)을 쌓다
Apr 18, 2020
제 874편 - 창의사 김천일이 있었다
Apr 17, 2020
제 873편 - 명나라군은 싸울 생각이 없었다
Apr 11, 2020
제 872편 - 위기일발의 진주성
Apr 10, 2020
제 871편 - 부산을 일본에 떼어 달라고?
Apr 04, 2020
제 870편 - 이순신의 장계-충청도 수군을 보내 달라
Apr 03, 2020
제 869편 - 김성일, 전염병으로 사망하다
Mar 28, 2020
제 868편 - “후퇴하는 일본군을 추격하지 말라!”
Mar 27, 2020
제 867편 - 한강변에서 낮잠 자는 명나라 장수
Mar 21, 2020
제 866편 - 한양 거리에 시체가 쌓였다
Mar 20, 2020
제 865편 - 한성 탈환, 그러나 왕자는 송환되지 않았다
Mar 14, 2020
제 864편 - 일본군, 한성에서 퇴각하다
Mar 13, 2020
제 863편 - 심유경과 소서행장의 휴전협상
Mar 07, 2020
제 862편 - 휴전협상에서 소외된 선조의 분노
Mar 06, 2020
제 861편 - 권율에게 「승전의 책임」을 묻겠다니…
Feb 29, 2020
제 860편 - 죽은 뒤에 머리를 깎인 평양성의 조선인들
Feb 28, 2020
제 859편 - “강화(講和)를 말하는 자, 목을 쳐라!”
Feb 22, 2020
제 858편 - 소서행장’과 ‘가등청정’사이를 이간질하라
Feb 21, 2020
제 857편 - 왕은 인질로 잡힌 두 왕자를 모른 체하고
Feb 15, 2020
제 856편 - 길어지는 전쟁, 굶어죽는 백성들
Feb 14, 2020
제 855편 - 다시 강화(講和)의 기류가 꿈틀거리고
Feb 08, 2020
제 854편 - 영웅이 된 권율, 망신 당한 이여송
Feb 07, 2020
제 853편 - 행주 대첩
Feb 01, 2020
제 852편 - 4천의 군사로 3만 대군에 맞서다
Jan 31, 2020
제 851편 - 행주산성에 포진하다
Jan 25, 2020
제 850편 - 전라 감사 권율, 북쪽으로 진격하다
Jan 24, 2020
제 849편 - 모두가 전쟁터로-농사는 누가 짓나
Jan 18, 2020
제 848편 - 조선수군의 악전 고투 '웅포해전'
Jan 17, 2020
제 847편 - 이순신의 5차 출전
Jan 11, 2020
제 846편 - 이순신, 승병을 요해처에 배치하다
Jan 10, 2020
제 845편 - 선조는 평양행이 두려웠다
Jan 04, 2020
제 844편 - “군량을 바치면 벼슬을 주겠다!”
Jan 03, 2020
제 843편 - 군량과 말먹이가 전세를 바꿨다
Dec 28, 2019
제 842편 - 명분 없는 후퇴 – 다시 평양으로
Dec 27, 2019
제 841편 - 겁에 질린 이여송은 전의를 상실하고
Dec 21, 2019
제 840편 - 이여송,‘벽제관 전투’에서 참패하다
Dec 20, 2019
제 839편 - 일본군, 한양도성의 백성들을 살육하다
Dec 14, 2019
제 838편 - 류성룡의 한탄, 왜군의 퇴로를 열어주다니
Dec 13, 2019
제 837편 - 평양성을 탈환하다
Dec 07, 2019
제 836편 - 조 ‧ 명 연합군, 평양으로 진격하다
Dec 06, 2019
제 835편 - 조선인 간첩들이 들끓었다
Nov 30, 2019
제 834편 - 이여송이 왔다
Nov 29, 2019
제 833편 - 명나라의 ‘10만 대군 출병’은 허풍이었다
Nov 23, 2019
제 832편 - 명나라 지원군이 출정했다는데…
Nov 22, 2019
제 831편 - 김시민과 진주대첩
Nov 16, 2019
제 830편 - 진주목사 김시민, 전투준비 끝!
Nov 15, 2019
제 829편 - 전쟁 통에 발명한 신무기「비격진천뢰」
Nov 09, 2019
제 828편 - 진주 목사 김시민이 있었다
Nov 08, 2019
제 827편 - 일본군은 왜 진주성을 노렸나
Nov 02, 2019
제 826편 - 금산전투, 의병장 조헌, 그리고 700의총
Nov 01, 2019
제 825편 - 의병장 조헌, 순절(殉節)할 각오로 진군하다
Oct 26, 2019
제 824편 - 청주성을 탈환하다
Oct 25, 2019
제 823편 - 충청 의병 조헌이 봉기하였다
Oct 19, 2019
제 822편 -「누르하치」의 지원군을 거부하다
Oct 18, 2019
제 821편 - 명나라, 지원군 파병을 통보하다
Oct 12, 2019
제 820편 - 의병대장 정문부, 그리고 「북관대첩비」
Oct 11, 2019
제 819편 - 동장군(冬將軍)도 합세하여 왜적을 치다
Oct 05, 2019
제 818편 - 목마구민(牧馬救民)에 담긴 이순신의 리더십
Oct 04, 2019
제 817편 - 함경도 의병, 국경인과 국세필을 참살하다
Sep 28, 2019
제 816편 - 정문부, 함경도 의병의 깃발을 들다
Sep 27, 2019
제 815편 - 함경도가 위급하다
Sep 21, 2019
제 814편 - 녹도만호 정운이 전사하였다
Sep 20, 2019
제 813편 - 4백여 척을 격파한 부산포 해전
Sep 14, 2019
제 812편 - 장사진으로 부산포를 공격하다
Sep 13, 2019
제 811편 - 이순신의 4차 출전, 부산포로 진격하다
Sep 07, 2019
제 810편 - 경기 감사 심대, 한성 수복을 도모하다
Sep 06, 2019
제 809편 - 평양은 명나라에, 경기 이남은 일본에 넘긴다?
Aug 31, 2019
제 808편 - 공격이냐 강화냐, 치열한 외교전
Aug 30, 2019
제 807편 - 50일간 휴전을 하자니
Aug 24, 2019
제 806편 - 선조, 의주에서 갈 길을 잃다
Aug 23, 2019
제 805편 - 이원익은 왜 평양성 공격에 나섰나
Aug 17, 2019
제 804편 - 생환포로들의 증언, 왜적이 전라도를 노린다
Aug 16, 2019
제 803편 - 전주 사고(史庫)의 왕조실록을 지킨 사람들
Aug 10, 2019
제 802편 - 이성계의 어진을 반출하라!
Aug 09, 2019
제 801편 - 호남 의병의 이치전투와 이순신의 안골포 해전
Aug 03, 2019
제 800편 - 웅치(熊峙)에서 왜군을 차단하라
Aug 02, 2019
제 799편 - 이순신과 한산대첩, 그리고 학익진
Jul 27, 2019
제 798편 - 출정! 삼군 연합함대
Jul 26, 2019
제 797편 - 금산전투와 의병대장 고경명
Jul 20, 2019
제 796편 - 창의사(倡義使) 김천일
Jul 19, 2019
제 795편 - 호남 의병, 깃발을 올리다
Jul 13, 2019
제 794편 - 정암진 전투의 승전보
Jul 12, 2019
제 793편 - 전라도 진격을 차단하라-경상도 의병의 분투
Jul 06, 2019
제 792편 - 의병장 곽재우와 경상감사 김수의 반목
Jul 05, 2019
제 791편 - 홍의장군 곽재우가 나섰다
Jun 29, 2019
제 790편 - 의병이 일어났다
Jun 28, 2019
제 789편 - 함경도의 반란군은 일본군과 결탁하고
Jun 22, 2019
제 788편 - 임해군과 순화군, 반란군의 포로가 되다
Jun 21, 2019
제 787편 - 해정창 전투
Jun 15, 2019
제 786편 - 평양전투의 패인을 둘러싼 갈등
Jun 14, 2019
제 785편 - 패전으로 끝난 제1차 평양성 전투
Jun 08, 2019
제 784편 - 명나라 장수 조승훈, 평양성으로 진격하다
Jun 07, 2019
제 783편 - 선조, 명나라의 구원을 눈물로 호소하다
Jun 01, 2019
제 782편 - 구원군은 언제 오나, 선조는 애가 타는데
May 31, 2019
제 781편 - 불태우기 전에 포로를 먼저 구출하라
May 25, 2019
제 780편 - 이순신과 원균의 전공 보고 방식
May 24, 2019
제 779편 - 연합 함대의 승리 당항포 해전
May 18, 2019
제 778편 - 선조는 의주에 있다
May 17, 2019
제 777편 - 명나라의 의심-조선 왕의 진위를 감별하라!
May 11, 2019
제 776편 - 전라 우수영 함대가 합류하다
May 10, 2019
제 775편 - 왜군에 잡혀간 여자 포로를 구출하다
May 04, 2019
제 774편 - 당포해전-왜군의 장수를 쓰러뜨리다
May 03, 2019
제 773편 - 조선 수군, 당포로 출격하다
Apr 27, 2019
제 772편 - 이순신, 어깨에 관통상을 입다
Apr 26, 2019
제 771편 - 평양성 함락-무기는 버리고 군량은 넘겨주고
Apr 20, 2019
제 770편 - 평양성은 왜 허무하게 무너졌나
Apr 19, 2019
제 769편 - 위기의 평양성
Apr 13, 2019
제 768편 - 사천포 해전, 거북선 출격하다!
Apr 12, 2019
제 767편 - 이순신 함대의 2차 출전
Apr 06, 2019
제 766편 - 명나라에 구원병을 청하다
Apr 05, 2019
제 765편 - 누가 나를 따라 요동으로 가겠는가?
Mar 30, 2019
제 764편 - 백성들의 저항-평양을 떠나지 말라!
Mar 29, 2019
제 763편 - 명나라에 구원을 청할 것인가, 말 것인가
Mar 23, 2019
제 762편 - 이순신, 1차 출전을 연승으로 마무리하다
Mar 22, 2019
제 761편 - 이순신과 원균, 그 갈등의 시작
Mar 16, 2019
제 760편 - 임진강 전선도 무너지고
Mar 15, 2019
제 759편 -「옥포해전」-이순신 불패신화의 서막을 열다
Mar 09, 2019
제 758편 - 전운이 감도는 거제 앞바다
Mar 08, 2019
제 757편 - 이순신은 경상도로, 선조는 평양으로
Mar 02, 2019
제 756편 - 이순신, 출정 채비를 갖추다
Mar 01, 2019
제 755편 - 종묘가 불탔다
Feb 23, 2019
제 754편 - 파천의 책임, 누가 질 것인가
Feb 22, 2019
제 753편 - 일본군, 한양도성에 무혈입성하다
Feb 16, 2019
제 752편 - 성난 민심-도성은 불타고
Feb 15, 2019
제 751편 - 선조, 한양 도성을 버리다
Feb 09, 2019
제 750편 -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다
Feb 08, 2019
제 749편 - 충주가 무너졌다
Feb 02, 2019
제 748편 - 천연의 요새 조령을 포기하다
Feb 01, 2019
제 747편 - 상주성도 무너지고
Jan 26, 2019
제 746편 - 왜군, 세 갈래 길로 북상하다
Jan 25, 2019
제 745편 - 동래부사 송상현의 의로움 죽음
Jan 19, 2019
제 744편 - 부산진성이 무너지다
Jan 18, 2019
제 743편 - 이순신, 전라좌수로 부임하다
Jan 12, 2019
제 742편 - 성을 쌓고 무기를 점검했으나...
Jan 11, 2019
제 741편 - 임진왜란 전야, 한‧중‧일 3국의 숨 막히는 외교전
Jan 05, 2019
제 740편 - 통신사의 귀국보고 - 전쟁은 있다 없다
Dec 29, 2018
제 739편 - 통신사, 현해탄을 건너다
Dec 22, 2018
제 738편 - 통신사를 보낼 테니 왜구의 수괴를 포박해오라!
Dec 15, 2018
제 737편 - 풍신수길, 통신사 파견을 강요하다
Dec 08, 2018
제 736 편 - 선조, 정철을 유배지로 내치다
Dec 01, 2018
제 735 편 - 정철은 이산해의 덫에 걸렸을까
Nov 24, 2018
제 734 편 - 정개청은 왜 죽어야 했나
Nov 17, 2018
제 733 편 - 수수께끼의 인물, 길삼봉은 누구인가
Nov 10, 2018
제 732 편 - 동인의 영수 이발(李潑), 멸문지화를 당하다
Nov 03, 2018
제 731 편 - 죽음을 부르는 적가문서(賊家文書)
Oct 27, 2018
제 730 편 - 기축옥사의 서막이 오르다
Oct 20, 2018
제 729 편 - 정여립은 반란을 일으켰을까
Oct 13, 2018
제 728 편 - 율곡이 죽었다
Oct 06, 2018
제 727 편 - 계미삼찬(癸未三竄)
Sep 29, 2018
제 726 편 - 율곡, 동인의 탄핵으로 낙향하다
Sep 22, 2018
제 725 편 - 북방이 수상하다-이탕개의 반란
Sep 15, 2018
제 724 편 - 율곡은「십만양병」을 주창했을까?
Sep 08, 2018
제 723 편 - 율곡 이이, 4년 만에 조정에 복귀하다
Sep 01, 2018
제 722 편 - 임금도 정승도 신진사림이 두려웠다
Aug 25, 2018
제 721 편 - 동 ‧서 화합을 위한 노력-율곡의 고군분투
Aug 18, 2018
제 720 편 - 심효원과 김효원을 외직으로 내치다
Aug 11, 2018
제 719 편 - 심의겸과 김효원, 동 ‧서 분당을 촉발하다
Aug 04, 2018
제 718 편 - 인사문제-낭관(郎官)은 힘이 세다
Jul 28, 2018
제 717 편 - 선조와 율곡, 향약(鄕約)시행을 저지하다
Jul 21, 2018
제 716 편 - 이준경의 유언“붕당을 경계하라!”
Jul 14, 2018
제 715 편 - 신‧구 사림의 갈등과 이황의 죽음
Jul 07, 2018
제 714 편 - 경복궁 문소전(文昭殿)의 위패 봉안 논쟁
Jun 30, 2018
제 713 편 - 무덤속의 조광조, 영의정에 오르다
Jun 23, 2018
제 712 편 - 수렴청정을 거두고 친정에 나서다
Jun 16, 2018
제 711 편 - 사림의 세상,「역사 바로 세우기」의 서막
Jun 09, 2018
제 710 편 - 인순왕후의 수렴청정
Jun 02, 2018
제 709 편 - 명종의 시대, 막을 내리다
May 26, 2018
제 708 편 - 불교 정책의 적폐를 청산하라!
May 19, 2018
제 707편 - 명종의 고민-「을사사화」를 어찌할 것인가
May 12, 2018
제 706 편 - 누가 명종의 뒤를 이을 것인가
May 05, 2018
제 705 편 - 정난정은 윤원형의 처를 독살했을까
Apr 28, 2018
제 704 편 - 척신 윤원형, 쫓겨나다
Apr 21, 2018
제 701편 - 특집 미니 토크 콘서트 "우리가 찾은 역사 이야기" 2부
Apr 14, 2018
제 700편 - 특집 미니 토크 콘서트 "우리가 찾은 역사 이야기" 1부
Apr 07, 2018
역사를 찾아서 외전 1부: 역사 속 전쟁의 신들과의 집중토론 (연개소문, 강감찬, 이성계)
Mar 17, 2018
역사를 찾아서 외전 2부: 역사 속 좀 놀아본 언니들과의 집중토론 (어우동, 장녹수, 황진이)
Mar 17, 2018
역사를 찾아서 외전 3부: 역사 속 대군들과의 집중토론 ‘대군들이 사는 세상’ (양녕대군, 안평대군, 제안대군)
Mar 17, 2018
역사를 찾아서 외전 4부: 역사 속 간신들과의 집중토론 ‘비선실세는 필요한가?’ (한명회, 유자광, 신돈, 이자겸)
Mar 17, 2018
역사를 찾아서 외전 5부: 역사 속 외척들과의 집중토론 ‘외척이 외척을 논하다’ (심온, 문정왕후, 윤원형)
Mar 17, 2018
역사를 찾아서 외전 6부: 역사 속 직진남들과의 집중토론 ‘직진남을 고찰하다’ (정몽주, 최영, 조광조, 남곤)
Mar 17, 2018
역사를 찾아서 외전 7부: 역사 속 전설의 고향 ‘기묘한 이야기’ (변계량, 남이, 전우치)
Mar 17, 2018
제 699편 - 문정왕후가 죽었다 보우도 죽었다
Mar 17, 2018
제 698편 - 임꺽정-의적이었나, 악당의 수괴였나?
Mar 10, 2018
제 697편 - 임꺽정이 붙잡혔다
Mar 03, 2018
제 696편 - 출격! 임꺽정을 잡아라
Feb 24, 2018
제 695편 - 황해도적 임꺽정, 한양 도성에 출현하다
Feb 17, 2018
제 694편 - 조선 팔도에 도적이 창궐하였다
Feb 10, 2018
제 693편 - 터전을 잃은 백성들이 도적이 되었다
Feb 03, 2018
제 692편 - 척신 권세가 「이량」의 몰락
Jan 27, 2018
제 691편 - 윤원형과 이량의 암투
Jan 20, 2018
제 690편 - 과거 시험 문제가 유출되었다
Jan 13, 2018
제 689편 - 심통원과 이량의 득세에 왕권은 표류하고
Jan 06, 2018
제 688편 - 또 다른 척신, 이량(李樑)이 등장하다
Dec 30, 2017
제 687편 - 「윤원형 탄핵」은 불발되고
Dec 23, 2017
제 686편 - 을묘왜란 그 후, 「비변사」가 변했다
Dec 16, 2017
제 685편 - 임진왜란의 전조, 을묘왜변
Dec 09, 2017
제 684편 - 왜적의 기습에 달량성은 무너지고
Dec 02, 2017
제 683편 - 을묘왜변, 누구의 소행인가
Nov 25, 2017
제 682편 - 국방은 허술하고 백성은 고달팠다
Nov 18, 2017
제 681편 - 단성 현감 조식, 역린을 범하다
Nov 11, 2017
제 680편 - 경복궁은 불타고 친정(親政)의 길은 멀기만 한데
Nov 04, 2017
제 679편 - 문정왕후, 수렴청정을 파하다
Oct 28, 2017
제 678편 - 모든 권력은 대비(大妃)로부터 나왔다
Oct 21, 2017
제 677편 - 문정왕후의 새 정치 파트너, 승려 「보우(普雨)」
Oct 14, 2017
제 676편 - 문정왕후의 비선조직-내수사와 내원당
Oct 07, 2017
제 675편 - 선종(禪宗)과 교종(敎宗)을 다시 세우다
Sep 30, 2017
제 674편 - 이기(李芑)가 죽었다
Sep 23, 2017
제 673편 - 충청도는 왜 「청홍도(淸洪道)」가 되었나
Sep 16, 2017
제 672편 - 37명의 목숨을 앗아간 봉함서찰 한 통
Sep 09, 2017
제 671편 - 윤원형은 왜 낭관(郎官)을 유배하였나
Sep 02, 2017
제 670편 - 또 하나의 사화, 안명세의 옥사
Aug 26, 2017
제 669편 - 속(續) 무정보감」편찬의 비밀
Aug 19, 2017
제 668편 - 윤원로는 왜 사약을 받았나
Aug 12, 2017
제 667편 - 양재역 벽서 사건
Aug 05, 2017
제 666편 - 억지공신, 위사공신(衛社功臣)
Jul 29, 2017
제 665편 - 계림군을 능지처참하다
Jul 22, 2017
제 664편 - 을사사화의 확대
Jul 15, 2017
제 663편 - 소윤의 반격-공포정치의 막이 오르다
Jul 08, 2017
제 662편 - 「을사사화」의 발발
Jul 01, 2017
제 661편 - 문정왕후, 수렴청정을 시작하다
Jun 24, 2017
제 660편 - 열두 살의 어린 명종, 왕위에 올랐으나
Jun 17, 2017
제 659편 - 비운의 군주 인종
Jun 10, 2017
제 658편 - 중종 39년의 치세를 끝내다
Jun 03, 2017
제 657편 - 왕위계승을 둘러싼 대윤 ․ 소윤의 암투
May 27, 2017
제 656편 - 중종의 딜레마, 조광조의 신원논란
May 20, 2017
제 655편 - 중종, 국정 난맥상을 자초하다
May 13, 2017
제 654편 - 왕위를 넘기겠다. 중종의 전위파동
May 06, 2017
제 653편 - 김안로 시대의 종말
Apr 29, 2017
제 652편 - 김안로의 어용언론,「대간(臺諫)」
Apr 22, 2017
제 651편 - 대윤(大尹)과 소윤(小尹)의 태동
Apr 15, 2017
제 650편 - 사화 그 이후, 공교육이 흔들리다
Apr 08, 2017
제 649편 - 토목공사에 승도를 동원하라
Apr 01, 2017
제 648편 - 정광필도 탄핵을 피하지 못하고
Mar 25, 2017
제 647편 - 김안로의 정치공작 「목패(木牌)의 변」
Mar 18, 2017
제 646편 - 훈구세력의 거두 심정을 내치다
Mar 11, 2017
제 645편 - 김안로의 귀환
Mar 04, 2017
제 644편 - 경빈 박 씨와 「작서의 변」
Feb 25, 2017
제 643편 - 척신 김안로, 탄핵을 받다
Feb 18, 2017
제 642편 - 기묘사림을 일망타진하다
Feb 11, 2017
제 641편 - 또 한 번의 옥사 「신사무옥」
Feb 04, 2017
제 640편 - 조광조의 그림자를 지우다
Jan 28, 2017
제 639편 - 조광조, 사약을 받다
Jan 21, 2017
제 638편 - 기묘사화, 주모자는 누구인가
Jan 14, 2017
제 637편 -「주초위왕(走肖爲王)」은 사실일까
Jan 07, 2017
제 636편 - 반정공신의 위훈을 삭탈하다
Dec 31, 2016
제 635편 - 사화 전야 - 깊어지는 갈등
Dec 24, 2016
제 634편 - 소격서를 혁파하다
Dec 17, 2016
제 633편 - 조광조, 현량과(賢良科)를 관철하다
Dec 10, 2016
제 632편 - 「소학」을 보급하고 「향약」을 시행하다
Dec 03, 2016
제 631 편 - 무인년 대지진과 군자 소인 논쟁
Nov 26, 2016
제 630편 - “정몽주와 김굉필을 문묘에 배향하라!”
Nov 19, 2016
제 629편 - 조정을 뒤흔든 조광조의 상소
Nov 12, 2016
제 628편 - 문제의 상소문,「폐비 신씨를 복위시키라」
Nov 05, 2016
제 627편 - 박영문 신윤무의 옥사와 조광조의 등장
Oct 29, 2016
제 626편 - 57년만에 신원된 문종의 비(妃) 권씨
Oct 22, 2016
제 625편 - 사림파, 「역사바로세우기」의 시동을 걸다
Oct 15, 2016
제 624편 - 「반정 삼대장」기세가 꺾이다
Oct 08, 2016
제 623편 - 대간의 힘, 공조판서를 바꾸다
Oct 01, 2016
제 622편 - 삼포 왜인들을 격퇴하다
Sep 24, 2016
제 621편 - 삼포 왜란
Sep 17, 2016
제 620편 - 가덕도 왜변, 그 범인을 색출하라
Sep 10, 2016
제 619편 - 조선의 골칫거리-삼포의 왜인들
Sep 03, 2016
제618편- 미약한 왕권, 꼬리를 무는 옥사(獄事)
Aug 27, 2016
제 617편 - 중종, 명나라 책봉은 좌절되고
Aug 20, 2016
제 616편 - 중종의 왕비 신씨를 폐하다
Aug 13, 2016
제 615편 - 중종반정
Aug 06, 2016
제 614편 - 폭정의 종말
Jul 30, 2016
제 613편 - 연산군, 시를 사랑한 폭군
Jul 23, 2016
제 612편 - 흥청 ? 운평 ? 광희 - 연산군의 여인들
Jul 16, 2016
제 611편 - 장녹수, 권세는 짧고 종말은 비참했다
Jul 09, 2016
제 610편 - 기생 장녹수, 후궁이 되다
Jul 02, 2016
제 609편 - 연산군의 한글탄압-“언문 사용을 금하라!”
Jun 25, 2016
제 608편 - 금표(禁標)-경기도 땅의 절반이 통제구역이었다
Jun 18, 2016
제 607편 - 상소문도 금지하고 사초도 쓰지 말라
Jun 11, 2016
제 606편 - 경연 ? 홍문관 ? 사간원을 혁파하다
Jun 04, 2016
제 605편 - 환관 김처선
May 28, 2016
제 604편 - 성균관을 철거하고 환관을 총애하다
May 21, 2016
제 603편 - 일인지배의 절대왕권을 구축하다
May 14, 2016
제 602편 - 천재지변도 신하들 탓이다!
May 07, 2016
제 601편 - 「능상」의 덫으로 극형을 남발하다
Apr 30, 2016
제 600편 - 갑자사화-120명을 극형에 처하다
Apr 23, 2016
제 599편 - 폐비 윤 씨, 복권되다
Apr 16, 2016
제 598편 - 연산군, 복수의 칼을 뽑다
Apr 09, 2016
제 597편 - 갑자사화의 서곡 - 이세좌·홍귀달 사건
Apr 02, 2016
제 596편 - 모든 신하를 적으로 돌리다
Mar 26, 2016
제 595편 - 홍길동이 나타났다!
Mar 19, 2016
제 594편 - 유희와 음행이 도를 넘다
Mar 12, 2016
제 593편 - 연산군, 사냥에 탐닉하다
Mar 05, 2016
제 592편 - 사치와 낭비로 나라 곳간은 비어가고
Feb 27, 2016
제 591편 - 연산군, 그 견제 받지 않은 왕권
Feb 20, 2016
제 590편 - 연산군의 선택, 유자광!
Feb 13, 2016
제 589편 - 「무오사화」는 왜 일어났나
Feb 06, 2016
제 588편 - 김종직의 「조의제문(弔義帝文)」
Jan 30, 2016
제 587편 - 김일손의 사초(史草), 무엇이 문제였나
Jan 23, 2016
제 586편 - 사화전야, 충돌로 치닫는 삼사(三司)와 연산군
Jan 16, 2016
제 585편 - 연산군, 폐비의 원혼을 위무하다
Jan 09, 2016
제 584편 - 연산군, 폐비윤씨가 생모임을 알다
Jan 02, 2016
제 583편 - 국왕의 또 다른 측근-내시와 봉보부인
Dec 26, 2015
제 582편 - 도전받는 왕권
Dec 19, 2015
제 581편 - 연산군과 대간, 「수륙재」를 두고 충돌하다
Dec 12, 2015
제 580편 - 세자 시절의 연산군, 어떤 인물이었나
Dec 05, 2015
제 579편 - 「표해록」은 어떻게 만들어졌나
Nov 28, 2015
제 578편 - 조선 유학자 최부의 중국 표류기
Nov 21, 2015
제 577편 - 「유구국」으로 떠밀려간 제주 사람들
Nov 14, 2015
제 576편 - 「사가독서」를 부활하다
Nov 07, 2015
제 575편 - 「경국대전」을 편찬하다
Oct 31, 2015
제 574편 - 두만강 너머로의 북방원정, 무엇을 남겼나
Oct 24, 2015
제 573편 - 대사헌 성현을 외직으로 내치다
Oct 17, 2015
제 572편 - 대간과 홍문관, 언론자유를 구가하다
Oct 10, 2015
제 571편 - 대간의 세력 확장과 성종과의 갈등
Oct 03, 2015
제 570편 - 성종, 시(詩)와 술을 사랑한 군주
Sep 26, 2015
제 569편 - 성종과 한명회-그 공존과 극복
Sep 19, 2015
제 568편 - 한명회와 「압구정 사건」
Sep 12, 2015
제 567편 - 명나라 후궁 한씨, 환관 정동, 그리고 한명회
Sep 05, 2015
제 566 편 - 어우동은 왜 죽어야 했나
Aug 29, 2015
제 565편 - 「어우동」은 음부였나 자유부인이었나
Aug 22, 2015
제 564편 - 혹한의 압록강·무력시위·그리고 파진(罷陣)
Aug 15, 2015
제 563편 - 이상한 전쟁-성종 10년의 서북 정벌
Aug 08, 2015
제 562편 - 폐비 윤씨, 사약을 받다
Aug 01, 2015
제 561편 - 성종은 왜 왕비를 폐하려 했나
Jul 25, 2015
제 560편 - 숙의 윤씨, 중전에 올랐으나
Jul 18, 2015
제 559편 - 홍문관의 힘-임사홍을 몰아내다
Jul 11, 2015
제 558편 - 집현전, 홍문관으로 부활하다
Jul 04, 2015
제 557편 - 훈구대신을 향한 대간의 탄핵공세
Jun 27, 2015
제 556편 - 원상제((院相制)를 폐지하고 홀로 서다
Jun 20, 2015
제 555편 - 성종, 친정(親政)에 나서다
Jun 13, 2015
제 554편 - 회간왕, 그는 누구인가
Jun 06, 2015
제 553편 - 열세 살 어린 임금, 공부에 빠지다
May 30, 2015
제 552편 - 좌리공신(佐理功臣), 왜 필요했나
May 23, 2015
제 551편 - 호패법을 폐하다
May 16, 2015
제 550편 - 열세 살의 어린 임금과 수렴청정
May 09, 2015
제 549편 - 한명회의 어린 사위가 왕위를 차지하다
May 02, 2015
제 548편 - 대신이 두려워서 사초를 고쳤다!
Apr 25, 2015
제 547편 - 남이장군과 북정가(北征歌)
Apr 18, 2015
제 546편 - 남이의 옥사, 어떻게 읽을 것인가
Apr 11, 2015
제 545편 - 남이(南怡)는 반역을 모의했는가
Apr 04, 2015
제 544편 - 예종, 분경(奔競)을 엄단하다
Mar 28, 2015
제 543편 - 승정원으로 출근하는 재상-「원상(院相)」
Mar 21, 2015
제 542편 - 석 달 동안의 내전, 반란이 평정되다
Mar 14, 2015
제 541편 - 반란 진압군 출정하다
Mar 07, 2015
제 540편 - 신숙주와 한명회를 의금부에 가두다
Feb 28, 2015
제 539편 - 이시애, 난을 일으키다
Feb 21, 2015
제 538편 - 호적과 군적을 개정하다
Feb 14, 2015
제 537편 - 무신들, 세조에게 반기를 들다
Feb 07, 2015
제 536편 - 세조의 주석(酒席) 정치와 ‘공신들의 세상’
Jan 31, 2015
제 535편 - 양녕대군, 세상을 떠나다
Jan 24, 2015
제 534편 - 횡행하는 난언(亂言) 그리고 언론탄압
Jan 17, 2015
제 533편 - 생육신의 은거와 저항
Jan 10, 2015
제 532편 - 단종과 사육신, 멀고 먼 신원(伸寃)의 길
Jan 03, 2015
제 531편 - 집현전을 혁파하다
Dec 27, 2014
제 530편 - 단종애사
Dec 20, 2014
제 529편 - 사 육 신
Dec 13, 2014
제 528편 - 단종 복위 거사는 물거품이 되고
Dec 06, 2014
제 527편 - 단종, 왕위를 넘기다
Nov 29, 2014
제 526편 - 수양대군, 실권을 장악하다
Nov 22, 2014
제 525편 - 이징옥은 왜 반기(叛旗)를 들었나
Nov 15, 2014
제 524편 - 안평대군, 사약을 받다
Nov 08, 2014
제 523편 - 「계 유 정 난」
Nov 01, 2014
제 522편 - 김종서는 안평대군과 손을 잡았는가
Oct 25, 2014
제 521편 - 수양은 대군(大君)에 만족하지 않았다
Oct 18, 2014
제 520편 - 「노산군 일기」 어떻게 읽을 것인가
Oct 11, 2014
제 519편 - 갈등 - 왕실 불사(佛事)
Oct 04, 2014
제 518편 - 문종, 왕위에 오르다
Sep 27, 2014
제 517편 - 문종의 제왕(帝王) 실습, 「대리청정」
Sep 20, 2014
제 516편 - 소헌왕후의 죽음과 심온의 명예회복
Sep 13, 2014
제 515편 - 두 명의 세자빈이 폐출되다
Sep 06, 2014
제 514편 - 문종, 30년을 세자로 살다
Aug 30, 2014
제 512편 - 일본에 「통신사」를 보내다
Aug 16, 2014
제 509편 - 훈민정음, 어떻게 만들었나
Jul 26, 2014
제 508편 - 최만리는 왜 「훈민정음」을 반대했나
Jul 19, 2014
제 506편 - 법으로 다스리고 인정(仁政)으로 포용하다
Jul 05, 2014
제 504편 - 육전(六典) 수찬-고치고 또 고치다
Jun 21, 2014
제 503편 - 세종, 성문법전을 정비하다
Jun 14, 2014
제 499편 - 노비 132명을 뇌물로 상납하다
May 17, 2014
제 498편 - “뇌물 수수 관행을 척결하라”
May 10, 2014
제 497편 - 신악(新樂)을 창제하다
May 03, 2014
제 495편 : 아악 정비, 율관, 그리고 도량형
Apr 19, 2014
제 494편 - 편경과 편종을 만들다
Apr 12, 2014
제 493편 - 아악(雅樂)의 기준음을 구하다
Apr 05, 2014
제 492편 - 4군 6진, 방어 요새인가 전진 기지인가
Mar 29, 2014
제 491편 - 세종, 김종서 그리고 육진(六鎭)
Mar 22, 2014
제 490편 - 북방으로의 강제 이주-사민(徙民)
Mar 15, 2014
제 489편 - 육진(六鎭) 개척
Mar 08, 2014
제 488편 - 북방영토 회복, 회령지역을 탈환하라!
Mar 01, 2014
제 487편 - 4군을 설치하다
Feb 22, 2014
다큐멘터리 역사를 찾아서
Feb 22, 2014
제 486편 - 1만5천 군사로 여진을 응징하다
Feb 15, 2014
제 485편 - 출정, 여진 정벌!
Feb 08, 2014
제 484편 - 정벌이냐 회유냐, 조선의 대(對)여진정책
Feb 01, 2014
제 483편 - “여진이 쳐들어왔다!”
Jan 25, 2014
제 482편 - 「삼강행실열녀도」
Jan 18, 2014
제 481편 - 「충신도」에 오른 정몽주와 길재
Jan 11, 2014
제 480편 - 마을 입구에 정려문(旌閭門)을 세운 뜻은
Jan 04, 2014
제 479편 - 「삼강행실도」를 편찬하다
Dec 28, 2013
제 478편 - 공법(貢法) 시행, 국민투표에 부치다
Dec 21, 2013
제 477편 - 세종도 태종실록을 보고 싶었다
Dec 14, 2013
제 476편 - 과거시험-제술이냐 강경이냐
Dec 07, 2013
제 475편 - 조선의 과거제도, 부정이 난무하였다
Nov 30, 2013
제 474편 - 「농사직설」을 편찬하다
Nov 23, 2013
제 473편 - 일본의 수차(水車)는 쓸모가 없었다
Nov 16, 2013
제 472편 - 무너진 「벽골제」, 어떻게 할 것인가
Nov 09, 2013
제 471편 - 기우제를 지내다
Nov 02, 2013
제 470편 - 영락제(永樂帝)가 죽었다
Oct 26, 2013
제 469편 - 「고려사」를 어떻게 쓸 것인가
Oct 19, 2013
제 468편 - 「조선통보」를 주조하다
Oct 12, 2013
제 467편 - 태종 사후, 양녕은 건재하였다
Oct 05, 2013
제 466편- 일본은 왜 대장경을 탐했는가
Sep 28, 2013
제 465편 - 태종 이방원 어떤 군주였나
Sep 21, 2013
제 464편 - 한양성 쌓으러 가는 길, 백성은 고달팠다
Sep 14, 2013
제 463편 - 평양감사 김점(金漸)의 몰락
Sep 07, 2013
제 462편 - 삼포개항, 그리고 왜관(倭館)
Aug 31, 2013
제 461편 - 새 모습을 갖춘 「집현전」과 「주자소」
Aug 24, 2013
제 460편 - 삼년상(三年喪)을 어찌 할 것인가
Aug 17, 2013
제 459편 - 명나라에 집단 망명한 조선의 승려들
Aug 10, 2013